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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미중 남중국해 해양안보 갈등…한국 '어느 편'에 딜레마

노정용 기자

기사입력 : 2020-12-14 03:00

미국 USS 머스틴(DDG 89)함이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군도, 베트남명 호앙사 군도)에서 항행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USS 머스틴(DDG 89)함이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군도, 베트남명 호앙사 군도)에서 항행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충돌직전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3월 이후에도 미국과 중국의 해군 함정은 남중국해에서만 10회 이상 갈등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른바 태평양 억제 구상(Pacific Deterrence Initiative)을 통해 대중 견제 행보를 재촉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 해군 함정이 코로나19 전염 상황으로 작전의 공백이 생긴 틈을 타 대만해협에서 해군 훈련을 강화하는 등 해양안보와 관련하여 공세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은 아태지역에 심각한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미국은 대중국 전략 보고서인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을 발표하여 중국의 군사 및 경제 정책을 비판하면서 중국의 팽창적인 움직임을 억제하기 위한 동맹국 연대 강화를 주장하는데, 이는 역내 동맹국들로 하여금 미국 편에 설 것을 촉구함으로써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실질적인 움직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 등과 함께하는 4각(Quad) 안보 협력체에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까지 포함한 ‘쿼드 플러스(Quad Plus)’를 언급함으로써 인도·태평양판 나토(NATO)를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까운 시기에 한국 또한 한미동맹의 일환으로 쿼드 플러스 참여를 강요받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편 중국은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중앙정치국 위원을 한국으로 보내면서 한중 간 경제 및 외교 문제를 비롯하여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최근에는 왕이 외교부장이 방한하여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 출범에 앞서 우리나라와의 외교 관계 개선을 저울질 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을 논의하기 위한 사전 방문이었지만, 주한 미군 분담금 등 한미동맹의 갈등 속에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외교 및 경제 교역 최상단의 관계를 맺고 있는 미중의 갈등 속에서 외교 및 경제적으로 어느 한 쪽에 서야 할 것을 강요받을 수도 있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인 위치, 외교적인 상황, 경제적인 환경, 북한과 주변국들의 안보위협 등을 고려할 때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또 다른 한쪽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은 지금까지의 외교안보 프레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미중의 경쟁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이 사이에서 한국의 국가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대안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안보정책 측면에서 볼 때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미중의 경쟁 속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다양한 안보 과제를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과제다. 이에 동아시아 해양을 배경으로 하는 다자간 안보협의체를 한국이 주도하는 노력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특정 국가를 겨냥한 안보협의체가 아닌 역내 해양협력에 관련된 다자간 안보협의체에 참가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미국과 중국에게 동시에 전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기회에 역내 해양협력에 관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중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동아시아 해양이라는 무대와 그 주변 국가들의 가치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21세기 들어 가장 역동적인 안보환경이 펼쳐지는 동아시아는 다자간 안보협의체가 가장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 특히 대부분의 안보협의체는 해양안보 문제를 필수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각각의 안보협의체에 참가하는 국가들의 첨예한 이익이 충돌하기 때문에 당사국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잘 드러난다. 실제로 동아시아 해양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안보협의체가 가동된 사례가 있다. 다만, 강대국 주도로 이뤄진 안보협의체는 특정한 국가를 겨냥하게 되고, 약소한 국가들은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동아시아 역내 다자간 안보협의체 구상의 효율성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 해양을 둘러싸고 있는 아세안(ASEAN) 국가들의 가치를 살펴봐야 한다. 지정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해석할 때 아세안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중국으로부터 시작되는 인도, 아프리카, 유럽을 포함한 대륙을 감싸는 림랜드(rimland)를 지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세안 국가들의 전략적인 선택에 따라 미중 경쟁의 양상에 큰 변화가 가능한 상황이고, 미중은 경제 및 군사 측면에서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림랜드를 차지하기 위한 지정학적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동아시아 해양안보 상황과 미중 경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지금이 우리가 아세안 국가를 아우르면서, 미중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는 안보협의체를 구상할 적절한 시기라 볼 수 있다. 현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한국 주도의 적극적인 해양 협력을 구상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신남방정책의 비전은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며, 이를 추진하는 3대 목표로 3P(교류/People, 번영/Prosperity, 평화/Peace)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상호 인적 교류와 경제 및 문화 교류에서는 일정 부분 성공적인 수준으로 평가할 만한 지표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제 남은 분야는 본격적으로 평화(peace)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해양에서 리더십이 부재한 현재 한국 해군이 다자간 해양안보협의체 구상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leading role)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로 볼 수 있다. 이에 우리가 동아시아 해양을 배경으로 아세안 국가는 물론이며 미국과 중국을 포함하는 해양안보협의체를 주도한다면 한국형 안보, 이른바 ‘K-Collective Security’를 국제적인 표준으로 정립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칭 ‘아시아·태평양 함대’또는 ‘아시아·태평양 해양안보협의체’를 창설하여 아시아·태평양 연안 모든 국가들이 참가할 수 있는 개방형 해양안보협의체를 구상하는 것이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협의체에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해양의 주체들을 모두 참여시키는 방안을 구상하여 해양 문제와 관련한 협력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와 같은 중견국가 주도의 새로운 형태의 해양안보협의체 구상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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