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억 속에서는 잊혀졌지만 현 WTO 사무총장 호베르투 아제베두가 선임될 당시 박태호 한국 통상교섭본부장은 2차 라운드까지 진출하며 WTO 사무총장에 도전했었다. 이는 물론 한국 정부의 반기문UN 사무총장 이후 국제기구 수장을 배출 하려는 정권의 노력이 더 해졌던 결과다.
외교관 성추행 문제로 파문을 야기한 문재인 대통령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의 전화통화는 WTO 사무총장 선출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이 외국 정상에게 WTO 사무총장 선거 문제를 타국 정상에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유는 WTO 가맹국 164개국 가운데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는 나라가 뉴질랜드이기 때문이다. WTO는 1국 1표 민주주의에 기초한 국제기구로, 사무총장이라 해도 전권을 갖고 조직을 좌지우지 흔들 수 없다.
WTO를 움직이는 진짜 실력자는 이른바 ‘트로이카(Troika)’로 불리는 3개 위원회 대표로, 총회(General Council), 분쟁조정위원회(Dispute Settlement Body), 무역정책조사위원회(Trade Policy Review Body)가 중심이다. 각 위원회의 대표는 대사(Ambassador)라 불리는데, 현재 WTO 총회 대사는 뉴질랜드가 맡고 있다. 따라서 뉴질랜드에 유명희 후보를 어필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저신다 아던 총리와의 통화가 외교관 성추행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 말고는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국제 사회의 분위기는 지난 접촉이 다분히 희망 섞인 가정에 의한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WTO 역사를 보면 1993년 이래 모두 6명의 사무총장이 등장했다. 국가별로 보면 아이슬란드(1993~1995), 이탈리아(1995~1999), 뉴질랜드(1999~2002), 태국(2002~2005), 프랑스(2005~2013), 브라질(2013~2020) 출신 사무총장이었는데, 아시아권의 태국 출신자가 최근까지 사무총장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엔도 그렇지만, 지역 간 배분이 명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묵시적인 동의하에 지역안배(Regional Balance)가 이뤄지고 있다.
6명의 WTO 역대 사무총장을 보면 유럽·남미·오세아니아·아시아 대륙에서 선출되어 왔다. 2020년 선거에 주목할 경우 아프리카·북미 두 지역이 영순위일 것이란 전망이다.
외신의 분석은 멕시코·케냐·나이지리아·몰도바·이집트 출신 후보자들이 일단 1차 관문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유명희 후보의 경우 상당히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의 반대는 이미 예상한 것이지만 부사무총장인 중국과의 관계 등을 살펴볼 때 ‘세력균형’을 중시하는 국제사회에서 유명희 후보의 도전은 상당히 버거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