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금수에 나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치솟고 있으나 미국의 셰일 기업들이 증산을 유보하거나 오히려 감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국제 유가 상승으로 미국 셰일 기업의 순익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잉여 이익금을 배당 수익으로 돌리거나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면서도 셰일 오일 증산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톱 9 셰일 오일 기업이 올해 1분기에 배당 및 자사주 매입에 지출한 자금이 94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들 기업이 셰일 유전 개발 투자비보다 54%가 많은 액수이다.
미국 셰일 오일 기업이 유전 개발이나 증산을 위한 투자를 꺼린 이유로는 공급망 악화, 지출 제한, 지난겨울의 이상 기후 등이 꼽힌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했다. 공급난으로 인해 철강 등 부품 값이 폭등하면서 채굴 장비 비용이 지난해에 비해 40~50% 증가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그 여파로 파이오니아 내추럴 리소시스, 마라톤 오일, APA, 데번 에너지 등 미국 굴지 셰일 오일 기업의 올 1분기 투자가 지난해 4분기에 비해 2~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셰일 오일 기업들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호재를 활용하지 않고, 절호의 증산 기회를 흘려보내려 한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지적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등에 따른 국제 유가와 미국의 휘발윳값 폭등을 막으려고 미국 셰일 오일 기업에 증산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셰일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난으로 인해 필요한 장비와 부품 조달이 어렵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어 셰일 오일 증산을 위한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바이든 정부 당국자들이 셰일 기업에 실망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하루에 1백만 배럴가량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으나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밝혔다. 올해 4월에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1,190만 배럴로 지난해 초에 비해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는 오는 6월 하루 43만 2,000배럴을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OPEC+는 5월에 이어 6월에도 같은 증산량을 유지한다. 이는 매달 일일 생산량을 40만 배럴씩 증산하기로 한 기존 방침보다 늘어난 것이지만, 서방의 추가 증산 요구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EC)는 6일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방안 수정을 제안했다. EU 집행위는 최근 러시아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을 중단하는 내용의 6차 러시아에 대한 제재안을 제안했다. 유럽연합은 수정안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에 좀 더 시간을 주기로했다.
헝가리, 슬로바키아는 2024년 말까지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 석유를 살 수 있도록 하고, 체코는 조기에 서유럽에서 송유관을 통해 석유를 확보하지 못하면 2024년 6월까지 러시아 석유를 계속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EU 집행위가 애초 제안한 원안에 따르면 EU의 27개 회원국은 제재 착수 시점부터 6개월 이내에 러시아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러시아 정유 제품 수입을 올해 말까지 중단하도록 했다.
이태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