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4일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상환금을 3일 채권자에게 송금함에 따라 가까스로 디폴트(국가 채무 불이행) 사태를 넘겼으나 앞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이 줄줄이 남아 있어 언제든 다시 디폴트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를 이유로 달러화나 유로화로 지급해야 하는 채권 상환금을 루블화로 지급하겠다고 고집하다가 막판에 이를 달러화로 송금해 1차 디폴트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러시아는 주요 국제 어음보관소를 거쳐 2022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상환금 5억 6,440만 달러, 2042년 만기 상환금 8,440만 달러를 미국의 씨티그룹 런던지점에 송금했다. 러시아가 이 상환금을 4일까지 내지 않으면 디폴트 사태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디폴트 위기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상환해야 하는 국채 쿠폰 만기일이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다. 또 미국이 채권자 보호를 위해 러시아가 내는 상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설정한 유예 기간이 25일로 끝난다. 오는 26일부터는 러시아가 채권 상환금을 내려고 해도, 투자자들이 합법적으로 이 돈을 받을 수 없게 된다고 AP 통신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는 애초 4월 4일 만기가 도래한 채권 상환금을 제때 내지 못했고, 1개월간의 유예 기간이 끝나는 5월 4일 전날에 이 돈을 채권자에게 송금했다. 그러나 송금 절차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씨티그룹과 같은 은행들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의식해 러시아가 송금해온 상환금을 채권자에게 전달하기에 앞서 미국과 영국 정부의 승인을 받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했다. 다만, 미국과 영국 정부는 이번에는 씨티그룹이 채권자에 이 돈을 전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AP가 전했다.
블루베리에셋 자산운용의 티머시 애쉬 전략가는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이 이번에는 해당 자금 지급을 허가해 준 것으로 보이나 OFAC는 러시아를 언제든지 러시아가 디폴트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외채 규모는 400억 달러가량이고, 이중 외국 채권자의 비중이 약 절반가량이다. 러시아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약 6,400억 달러의 보유 외환이 있었으나 이중의 절반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로 동결됐다.
러시아에 대한 디폴트 선언은 국제 신용평가사나 법원이 하게 된다. 피치를 비롯한 주요 신용평가사는 이미 러시아에 대해 디폴트 직전 단계인 ‘선택적 디폴트’ 판정을 내렸다. 이들 신용평가사는 러시아가 애초 약정대로 달러화나 유로화로 채권 상환금을 내지 못하면 디폴트를 선언한다.
또한 디폴트에 따른 투자자 보호를 위한 러시아의 ‘신용부도스와프’(CDS)를 보유한 채권자가 신용파생상품 결정위원회(CDDC)에 CDS에 대한 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 CDDC는 지난달 29일 회의를 열어 러시아의 상황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고, 3일 다시 회의를 개최했다.
러시아 채권 보유자의 25% 이상이 이자나 상환금을 받지 못하면 채권자들이 이를 강제 집행하도록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때 통상적으로는 법원 판결에 앞서 채무자와 채권자가 협상을 통해 새로운 채권 발행 등에 합의하게 된다. 그렇지만,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이런 협상이 불가능하다. 러시아가 국가 부도 사태를 맞으면 채권 추가 발행이 어려워지고, 국제 금융계에서 고립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