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붕괴 위기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구해 내며 ‘슈퍼 마리오’로 불리게 된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새 이탈리아 총리로 취임했다.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지난 3일 드라기 전 총재를 불러 면담을 한 후 드라기 전 총재에게 총리를 맡기고 내각 구성 권한을 부여했다. 드라기는 이를 수락했고 이탈리아 총리 자리에 올랐다.
드라기의 총리 취임은 기존 연립정부 재결합 노력이 결국 실패한 탓이다. 지난달 연정이 무너진 이탈리아는 3주째 위기 정국이었다. 연정을 구성하는 반 체제 정당 오성운동(MSS)과 중도좌파 성향 민주당(PD), 중도 ‘생동하는 이탈리아’(IV) 등 3개 정당이 재결합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주세페 콘테 총리의 행정수반 역할도 2년 6개월 만에 끝났다.
드라기 전 총재는 연정 위기가 불거질 때부터 꾸준히 차기 총리 물망에 올랐던 인물로 개인 이력도 화려하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이탈리아 재무부 고위 관리와 중앙은행 총재를 거쳐 세계은행 집행 이사, 골드만삭스 부회장 등을 지냈다.
또한 2011년 11월 ECB 총재에 취임했다. ECB는 유럽연합(EU)의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그는 남유럽에 재정 위기가 닥친 2012년 유로존 붕괴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유럽 채권 매입을 꺼리자 “유로를 지키기 위해 뭐든 할 준비가 돼 있다. 나를 믿어 달라”는 연설로 불신을 가라앉히고, 유로존을 소생시켰다. 현재 ECB가 시행하고 있는 국채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 정책을 시작한 것도 드라기 전 총재 재임 때다. 그는 8년 임기를 마치고 2019년 10월 물러났다.
드라기 체제는 코로나19와 경제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춘 실무형 내각이 될 전망이다. 정치인을 배제하고 이념 성향과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인재를 구하지 않겠느냐는 것. 일단 EU가 코로나19 경제 충격 해소 명목으로 이탈리아에 제공키로 한 2090억 유로(약 280조 원)를 어떻게 쓰느냐가 당면 과제다. 이를 둘러싼 갈등이 연정 붕괴의 시발점이었다. 변수는 엘리트 경제 관료에 대한 반감이 큰 오성운동이다. 드라기 내각마저 출범에 실패한다면 남은 선택지는 조기 총선뿐이다. 여론 구도상 극우정당 동맹이 이끄는 우파연합의 압승이 예상된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