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선동' 혐의로 탄핵 심판을 받게 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되레 기세등등한 모양새. 공화당이 자신의 탄핵을 막아주기 위해 결집하고 있는 데다가, 백악관을 떠나 새롭게 자리 잡은 플로리다주에서 공식적으로 '전직 대통령 사무실'까지 여는 등 여전히 정치력을 과시하고 있다.
상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전체 100명 중 3분의 2인 67명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50명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전원 찬성하더라도 공화당에서 최소 17명의 '반란표'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화당은 지난 2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 대한 합헌 여부를 묻는 표결에서 무려 45명이 위헌이라는 데 표를 던졌다. 공화당의 이런 기류가 탄핵 심판 때까지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 자명한 만큼 탄핵은 결국 성사되지 못 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미 의회에 난입했던 시위대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선동당했다"라며 반란표를 대거 이끌어낼 것처럼 보였던 공화당의 '1인자'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도 탄핵 심판이 위헌이라고 투표했다.
이처럼 공화당이 미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 심판을 두 차례나 당하게 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결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표심' 때문이다. 지난 11월 3일 대선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다. 하지만, 그의 저력을 과시한 무대이기도 했음. 무려 7000만 표 이상을 얻으며 공화당 대선 후보로는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고, 7000만 달러(약 774억 원)가 넘는 정치자금을 거두어 들였다.
2024년 대선 정권 탈환보다 당장 2022년 치러질 중간선거에서 자신의 의석을 지켜야 하는 공화당 의원들로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이 필요한 상황이다. 격전지로 불리는 '스윙 스테이트'를 지역구로 뒀거나, 2024년 대권을 노리는 의원들이라면 더욱 그러한 형편이다.
일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원 80%가 의회 난입 사태가 잘못됐다면서도 79%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또한 57%는 공화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계속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영향력을 거듭 확인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탄핵안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들을 중간선거 낙선 대상으로 삼고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 한가지 점은 로나 맥대니얼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재출마를 원하냐는 질문에 "당은 엄격히 중립을 지켜야 하고, 누구의 출마도 권유하거나 만류하지 않을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그는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 등을 거론하며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탈환하는 것이고, 이들이 당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넌'을 겨냥해 "선을 넘은 것 같다"라며 "그들은 매우 위험해 보이며,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라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을 떠나 제3당을 창당할 가능성에 대해서 로나 맥대니얼 위원장은 "민주당의 승리를 완전히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경계했다. 바로 이러한 점들을 볼 때 트럼프의 영향력은 적어도 다음 하원의원 선거까지는 어느 정도 파괴력을 가질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