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대미 의존도가 유럽을 뒤흔들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유럽연합(EU)이 ‘유럽 우선주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년간 펼쳐온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시달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유럽 현지 언론이 입수한 EU 내부문건 초안에 따르면 EU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유럽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하고 앞으로 보호주의 노선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EU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펼친 자국 우선주의가 미국과 달러의 패권화를 불러와 유럽의 불안정성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유럽과 아시아 등 지구촌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돼 미국에서 파생된 조그마한 불안정성에도 세계정세가 함께 흔들린다는 것.
EU는 특히 이란 제재 등 미국의 ‘불법적이고 주권 침해적인 정책’으로 유럽의 입지가 난감해졌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이란을 제재하는 바람에 유럽이 이슬람 국가들과 합법적인 무역을 하고 있음에도 대금 지불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EU는 유럽이 주도하는 금융시장 인프라가 타국의 제재 정책에 의해 영향 받을 경우 회원국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은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높은 대미 의존도라는) 약점을 아주 잘 드러냈다”면서 “그가 없어졌더라도 우리는 세계 속에서 우리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 EU의 크기에 걸맞은 경제적, 재정적 힘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건에서는 EU에 대한 외국의 직접투자를 제한해 회원국의 경제적 자립도를 키운다는 구상도 제시됐다. 달러의 강·약세에 크게 영향받는 크루드 오일 등을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것도 자립성 강화 수단으로 제시했다. 또한 언론들은 “EU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미·EU 관계를 구축하려 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부숴놓은 국제규범을 발판 삼아 금융과 경제 등 영역에서 자립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