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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세계 기업들에 ‘미·중 사이 선택’ 노골적 요구

노정용 기자

기사입력 : 2021-01-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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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글로벌이코노믹
중국 정부가 세계 기업들에 미국 편에 설 것인지, 자국 편에 설 것인지 분명히 줄을 서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중국 시장에 발을 담근 한국을 포함한 세계 기업들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미국이 중국 기업과 관리들을 상대로 다양한 제재를 시행 중인 가운데 중국이 이런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공식적인 규정을 도입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주 발표한 상무부령인 '외국 법률·조치의 부당한 역외 적용 저지 방법(규정)'의 핵심 내용은 미국의 대중 제재를 일절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16개 조항으로 구성된 규정에 '미국'이라는 두 글자가 직접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 상무부는 규정 도입 취지를 설명하려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기자와의 문답' 형식 보도자료에서 "오랫동안 어떤 나라가 일방주의를 밀어붙이면서 다른 나라 기업과 개인이 관련국과 경제무역 활동을 하지 못하게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말한 '어떤 나라'가 자국을 상대로 촘촘한 제재망을 구축한 미국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따르지 말라는 선언적인 요구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 제재를 이행한 자국 및 외국 기업에 경제적 불이익을 줄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방법'은 9조에서 '외국'(미국)의 제재로 경제적 손해를 본 중국의 개인이나 기업은 해당 제재를 이행한 상대방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중국 법원에 낼 수 있도록 했다.

배상에 응하지 않으면 중국 법원이 강제 집행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포함된다. 미국의 대중 제재를 무력화하는 내용과 더불어 미국의 제재 표적이 된 자국 기업을 정부가 직접 구제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방법' 11조는 "중국 공민, 법인 또는 기타 조직이 외국의 금지령 때문에 손해를 봤거나 외국의 법률과 조치(제재)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한 손실을 보게 됐을 때 정부는 실제 상황에 근거해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규정했다.

아직 구체적 시행 방침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조항은 화웨이나 SMIC처럼 미국의 제재로 어려움에 부닥친 자국 기업들에 대규모 재정 지원에 나설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치열한 미중 갈등 와중에 미국이 각종 대중 제재를 강화했음에도 그간 중국은 "필요한 반격을 취하겠다"는 틀에 박힌 외교적 수사만 반복해 내놓았을 뿐이지 반격다운 반격을 가하거나 화웨이처럼 미국의 '제재 표적'이 된 기업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중국이 이번에 새 규정을 선포하면서 미국의 대중 제재 무력화 시도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한편 국가가 직접 자국 기업과 개인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나라 안팎에 천명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통상 전문가인 닉 마로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새 상무부령이 나온 것은 중국 당국의 전략적 사고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을 보여준다"며 "중국 관료들은 더 쉽게 기업들에 어느 한 편에 설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조치로 미국의 대중 제재와 관련된 여러 글로벌 기업이 잠재적 손배소 위기에 처하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가해진 미국의 대중 경제 제재는 상당히 다양하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미국의 대중 제재 방식은 상무부와 국방부가 지정한 블랙리스트 운용이다.

향후 미중관계 추이에 따라 미국이 중국 기업들에게 그랬듯이 중국이 몇몇 상징적인 미국 기업을 골라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올려 자국 기업들과의 거래를 금지할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

한편, 중국이 미국의 제재 무력화를 노리는 새 규정을 하필이면 민감한 미국 정권 교체기에 내놓았다는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중국이 미국에 기존 대중 강경 정책을 조정하도록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는 분위기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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