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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2021-외교] 미국의 대중국 ‘관여정책’ 실패, 이후 진로

노정용 기자

기사입력 : 2021-01-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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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글로벌이코노믹
2020년은 미중관계에서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협력의 시대가 끝나고 전략적 경쟁의 시대로 진입한 한 해였다. 1970년대 초반 미국과 중국은 모두 소련을 가장 큰 안보위협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협력을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의 해체가 미‧중협력의 정치적 기초를 크게 약화시켰으나, 그 이후에도 미‧중협력은 경제, 문화,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훨씬 심도있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는 미‧중협력, 즉 중국에 대한 관여정책이 중국의 변화를 전제로 했으나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이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는 데 정파를 초월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1970년대는 물론이고, 1990년대 이후에도 미국의 관여정책이 중국의 변화를 주요 목표로 삼았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1990년대 미‧중협력의 확대에는 정치적 요인보다는 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이 시기 미국의 중국에 대한 기대는 중국이 서구적 가치와 제도를 수용할 것이라는 데 있었다기보다는 중국이 상당 기간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 머무를 것이라는 데 있었다. 그런데 2007~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경제규모는 물론이고 주요 기술 영역에서도 미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혀갔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도 미‧중협력이 중국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했고, 이러한 식의 협력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됐다.

이에 미국의 대중정책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었고,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대중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등장했다. 다만 이러한 정책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데, 트럼프의 스타일로 인해 2020년 미중갈등이 갑작스럽게 고조되고 또 매우 위험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미중 전략적 경쟁이 빠르게 진행된 데에는 중국도 원인을 제공했다. 중국은 자신의 패권을 추구할 의사가 없는데 중국의 의도를 오해하고 있다며 미중관계가 패권경쟁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 당혹감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 혹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과잉행위(overreach)를 한 바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이후 개혁개방 시기의 국가전략을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시켜왔다. 국내적으로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주의적 방향을 강조하고, 대외적으로는 “핵심이익”의 수호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합당한” 발언권 확보를 추구하고 있다. 전자는 대외적 이미지를 약화시키는 면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 내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후자의 변화와 관련된 일부 공세적 발언과 행위는 다른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중국이 세계를 자기의 의도대로 변경시키려는 시도에 나선다는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남중국해의 군사화가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다.

2017년 개최된 제19차 당대회에서 중국공산당이 2049년까지의 국가건설목표로 “사회주의현대화강국”을 제시한 것도 이에 일조했다. 중국에게 “강국”이라는 개념은 규모만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앞서는 국가가 되겠다는 의미가 있지만, 외부에서는 이 개념을 중국이 다른 나라에 대한 우위를 추구하는 맥락에서 이해하기 쉽다. 실제로 중국의 공론장에서 이러한 열망이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이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문제의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나라들에서 확산되고 있다.

중국 자신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다른 국가의 시점에서는 패권 추구로 이해될 수 있는 발언과 행위가 없지 않았고, 이것이 미국이 더 공격적으로 중국 압박에 나설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형성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이 기존의 협력관계로 돌아가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가장 바람직한 것은 경쟁이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를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와 같이 예측 가능하지 않고 돌발적으로 진행되는 대중공세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최근 “재앙을 피하는 경쟁(competition without catastrophe)”(Curt M. Campbell), “관리되는 경쟁(managed competition)”(David Shambaugh), “협력적 경쟁(cooperative rivalry)”(Joseph Nye) 등과 같은 제안들이 이어진 이유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정책도 이러한 제안의 틀 내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 대한 압박을 더 예측 가능하고 다른 국가들과 조율된 방식으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필요한 영역에서는 중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쟁과 협력이라는 상충하는 내용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수개월 동안 이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정리되어갈지, 그리고 이 과정이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가 미중관계와 관련한 주요 관전 포인트다.

중국의 전 외교부 부부장 푸잉이 2020년 11월 24일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 바이든 행정부 이후 미중관계에 대한 중국의 기대와 제안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푸잉은 이 글에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태도 변화, 특히 중국정치체제의 인정, 주권영토 문제에 대한 개입 중단 등을 요구했는데 이와 함께 중국이 미국의 오해를 초래할 수 있는 사안들(지적 재산권 보호, 남중국해에서의 군비 증강)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이 글에서는 경쟁하면서 협력한다는 의미의 “coopetition”(중국어로는 競合으로 포기)이라는 조어를 사용했다. 중국 내에서 대미관계에 대해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국 내에 여전히 강경한 목소리가 많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반응에 따라서는 중국도 미‧중관계의 안정을 위해 성의있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움직임들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최근 중국의 대외정책에서 과잉 행위(ovrreach)를 조절하는 것과 함께 진행된다면 중국의 전략적 경쟁이 대립적이고 충돌적 방식보다는 규칙을 기반으로 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 모두 더 많은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미‧중 경쟁이 대립적 방식으로 전개될 경우와 함께 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2021년 상반기의 중미관계 변화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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